컨텐츠바로가기 하단메뉴바로가기

신중국사 (수정증보판)

신중국사 (수정증보판)

책 소개

점차 세계의 심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의 중국을 알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점에서 <신중국사>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인 페어뱅크 교수가 초판을 낸 지 10년 만에 그의 제자인 멀 골드만이 내용을 보강하고 뒷부분을 새로 쓴 것이다. 현대 중국의 10년 동안의 변화를 수용해서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었으며, 김형종과 신성곤 교수가 다시 번역을 하여 펴낸 완전 개역판이다. 이 책은 중국사 전반을 다루고 있되, 전근대사보다는 근현대사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중국 바깥에 대한 사는 독자를 대상으로 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상세한 서술보다는 중국사의 전반적인 경향이나 특성에 대한 분석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차례

수정증보판의 서문 저자의 서문 서론 : 중국사 이해의 시각 제1부 황제독재의 등장과 몰락 제1장 기원 : 고고학의 발견 제2장 최초의 통일 : 국가유교 제3장 불교시대의 재통일 제4장 중국의 전성기 : 북송과 남송 제5장 송조의 역설과 내륙 아시아 제6장 명조의 정부 제7장 청조의 성공담 제2부 후기 중화제국, 1600-1911년 제8장 발전이 없는 성장 제9장 변경의 불안과 문호개방 제10장 반란과 중흥 제11장 초기 근대화와 청조의 몰락 제12장 공화혁명, 1901-1916년 제3부 중화민국, 1912-1949년 제13장 중국적 시민사회의 모색 제14장 국민혁명과 남경정부 제15장 중국공산당의 재기 제16장 항일전쟁, 1937-1945년 제17장 내전과 대만의 국민당 제4부 중화인민공화국, 1949-1991년 제18장 정부와 농촌 통제의 확립 제19장 대약진운동, 1958-1960년 제20장 문화대혁명, 1966-1976년 제21장 모택동 이후의 개혁기 후기 초판의 후기(결론) 추천도서목록 편집자 후기 초판 역자 후기 수정증보판 역자 후기 인명 색인 표 차례 지도 차례

저자

존 킹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
멀 골드만Merle Goldman

역자

김형종, 신성곤
김형종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근대사를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아틀라스 중국사』(공저), 『청말 신정기의 연구』, 『1880년대 조선-청 공동감계와 국경회담의 연구』가 있고, 역서로 『신중국사』, 『중국현대사상사론』, 『진인각, 최후의 20년』, 『1880년대 조선-청 국경회담 관련 자료 선역』, 『서문으로 보는 중국의 역사 사상』, 『복혜전서』 1-3, 『국역 《청계중일한관계사료》』 1·2·3·4·5 『淸末新政期의 硏究 - 江蘇省의 新政과 紳士層』(저서, 2002);『동아시아 역사 속의 신해혁명』(공저, 2013);『중국의 청사 편찬과 청사 연구』(공저, 2010)등이 있다. 신성곤 1984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양사학과 졸업, 1987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대학원 동양사학과 졸업(석사), 1995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대학원 동양사학과 졸업(박사), 현재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사학과 부교수.

출판사 리뷰

멀 골드만(지은이)의 말 중국은 12억이나 되고 또 그 크기가 계속 늘어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인구를 먹이고, 재우고, 생계를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독특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모택동 이후 시기의 중국은 이러한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으며, 그 오랜 위대함을 되살릴 수 있는 잠재력도 획득한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앞으로의 시대에 세계의 ... 국가들에게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책 속에서 국민당의 전장에서의 무능력은 후방에서의 실정과 맞물려 있었다. 그것은 경제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지폐가 늘어남에 따라 물가상승은 폭등세를 보였다.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은 중국의 연해도시에서는 그 자산을 산업적인 용도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부패한 관리들의 약탈대상이 되었다. 잘못된 경제운영 외에도 국민당 정부는 도시민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그 결과 중국 민중의 주요한 구성요소인 이들로부터 소외당했다.... 모두가 평화를 이야기하고 희망하는 시점에서 이렇게 중국인끼리 맞붙어 싸우게 하는 것은 아주 불리한 여론을 가져왔다. - (399 ~ 400) 서양 열강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 1850년대와 1860년대의 기나긴 전쟁과 협상은 한족이 일반적으로 원칙을 방어하기 위해서 싸우려는 자세를 갖추었던 반면, 만주족은 일반적으로 왕조의 보존이라는 이익을 위해서 침략자들과 타협하려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공친왕과 넒은 서태후를 포함한 그의 후원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유화정책은 대단히 시기적절한 움직임이었으며 청조가 한 세대 이상 동안 더 생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으로는 중국 해안에 대한 영국과의 공동지배에서 어쨌든 청조가 약세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다. (302) 중국 법률 아래서 서구적 형태의 자유주의는 결국에 가서는 함께 왔던 동료, 즉 불평등조약 체제에 의해서도 방해를 받았다. 1910년대와 1920년대의 군벌시대는 ˝조약의 세기˝ 동안 서구의 영향력이 가장 강했던 시기와 일치한다. 조약항 밖의 ˝내지˝를 휩쓸었던 군벌의 존재는 보약항 부근에서 외국이 군함을 정박시키는 상황을 잠재적으로 합리화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중국적인 시민사회의 번영은 부분적으로는 서구적 제도를 모델로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중국의 새로운 민족주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자극한 제국주의 바로 그 자체에 의해서 보호를 받고 있었다. (316)

함께하면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