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시몬느 베이유, 그녀는 서른네 살에 죽었다. 이 모순의 시대에 그 누구보다도 격렬하게 또 양심의 뜻에 따라서 산 여자였다. 그녀의 일생은 가난한 자의 고통 속에서 신과 진실을 찾는 순례의 길이었다. 그녀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바로 이기심이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가장 빛나는 삶을 살았으나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모순을 지니고 있었다. 친구였던 시몬느 보루아르조차 "성녀"라고 불렀던 베이유, 그녀의 행동은 철학자 알랭의 표현처럼 "유용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녀의 불꽃 같은 청춘은 20세기의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문학과 철학과 정치적인 저작 속에서 그리고 인류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고 있다. 시몬느 뻬트르망은 베이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고등사범학교의 동기생이었다. 문학박사인 그녀는 베이유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녀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훌륭하게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영혼의 생애와 사상을 쓸 수 있었다. 이 「불꽃의 여자」에 의해서 베이유는 다시 부활했다는 평을 들을 만큼 뻬트르망은 완벽하고도 훌륭한 전기를 썼다.
차례
어린 시절
알랭과의 만남
고등사범학교 입학시험 준비
고등사범학교 시절
르 뿌이시절
독일 여행
로안느 시절
공장 생활
부르제. 인민 전선의 초기
스페인 내란과 인민 전선. 이탈리아 여행
쌩 깽땡과 솔레메: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
내면의 새로운 경험과 평화주의 포기
제2차 세계대전 발생
마르세이유 I
마르세이유 II
뉴욕
런던
저자
시몬 페트르망Simone Pétrement
"1907년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시몬 베유와 함께 앙리 4세 고등중학교에 다녔고, 알랭에게 철학을 배웠다. 고등사범학교 동기생이기도 했던 베유와 절친한 사이였다.
1931년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1947년에는 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학예사이기도 했다.
시몬 베유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서 베유의 사상과 생애를 훌륭하게 집대성했고, 1974년 이 책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상을 수상했다. 1985년에는 신학적 에세이 『분리된 신 : 그노시스주의의 기원』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몽티옹 상을 받았다. 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역자
강경화
1951년 7월 14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다. 수송초등학교, 이화여중과 이화여고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Blake의 묵시론적 상상력으로 본전원시의 세계에 대한 연구」로 문학석사, 「Blake의 ‘자아’와 전도된 세계」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세 개의 전쟁」이 당선되었고, 1975년 [현대문학]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추천완료 되었다. 시인 姜昌民과 혼인하였고, 衿川 姜氏로 創氏개명을 하였다.
번역서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동인들과 함께 펴낸 『적과 적』, 『왜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속에 머리를 집어 말벌과 함께 죽어버렸는가』, 시집 『늦가을 배추벌레의 노래』, 『가라, 사랑의 세월이여』, 수필집 『사랑을 바꾸세요』 등의 작품을 펴냈다. 동덕여자대학교 영문과 전임교수를 역임하고 연세대학교 예술대학 영어영문학과 강사로 일했다. 사단법인 [한마음문화원] 부설 [체선문화원] 부원장을 지냈다.
유방암 4기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하여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다. 이후 경기 양평군로 이사를 갔다. 미타선원에서 법사를 받았다. 약 10년 후 폐, 임파선, 간에 전이가 되어 2009년 타계했다.
출판사 리뷰
절망의 시대로 던져진 고귀한 영혼,
어긋난 세계에서 길을 찾다
시몬 베유는 1909년 프랑스 파리의 유대계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참호의 병사들에게 식량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들은 베유는 자기 몫의 식량을 군인들에게 보내려 했으며, 중국에 대기근이 났다는 소식에 오열하기도 했다. 또한 지적인 재능과 솔직하고 따스한 심성을 함께 지니고 있어 언제 어디에서나 혁명적인 기질을 보였다. 고등중학교 시기 이전부터 친구들에게 자신은 “볼셰비키”라고 했고, 학교 동기생이었던 시몬 보부아르에게 “당신은 아직 배를 곯아본 적이 없군” 하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렇지만 몸은 태생적으로 허약했다. 어릴 때 이미 죽을 고비를 넘겼던 베유를 두고 가족들은 그저 그녀가 살아 있는 것에 감사했을 정도였다.
베유는 철학 공부에서 해방의 길을 모색했다. 고등중학교 시절에 만난 철학자 알랭의 가르침이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폐허와 불안 속에서 세상을 구원할 진실을 향한 열망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1928년에는 프랑스의 최상위 교육기관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철학을 공부했고,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르 퓌 고등여자중학교에서 철학과 그리스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관련된 글을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만큼 현실의 소련 체제에는 실망할 수밖에 없는데, 러시아의 정치제도가 결국 국가 권력을 위해 노동자들을 노동수단에 예속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스탈린 정부로부터 추방되어 프랑스로 망명을 온 트로츠키와 밤새 열띤 토론을 펼치기도 했다. 베유는 끝까지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은 채로 노동조합 운동에 전념했고, 언제나 노동자들과 어울려 지냈다. 이렇듯 베유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곧 그것을 극복할 진실을 발견했고, 무엇보다도 스스로 진실을 재건해나갔다.
사상과 실천 사이에 어떠한 빈틈도 없던 시대의 지식인,
눈부시게 빛나던 사랑과 의지의 투쟁은 하나의 길로 통했다
베유의 삶을 따라 걷다 보면 언제나 사회의 가장 큰 고통이 존재하는 장소에 도달한다. 자신의 희생으로 구원할 수 있는 존재들을 찾아나섰고, 비참한 사람들의 고통을 대신했다. 그녀는 당시 유럽의 사회주의 노동운동에 깊이 관여하며 적극적으로 노동자 파업을 지원했다. 1934년에는 실제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 생활을 시작했다. 월급의 절반을 파업 광부들에게 기부하고, 하층계급과 같은 생활을 고집했다. 주거와 의복은 물론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는 것까지도 그들과 함께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을 때에는 바르셀로나의 무정부주의자 부대에 합류해 군인들과 고난을 함께했다. 1940년 이후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하고 파시즘 세력이 유럽 전역을 위협하자 미국 뉴욕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런던으로 가서 드 골이 이끄는 프랑스 해방운동에 합류했다. 이렇듯 참여를 동반하지 않는 사유는 베유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또한 현실에 타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그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안전한 소속을 거부했다.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의 민족주의를 경계했고, 노동운동에 삶을 투신하면서도 공산당원이 되지 않았다. 또한 신의 사랑과 구원에 삶을 기대면서도 끝까지 교회 바깥에 머물렀다. 시몬 베유는 분명 동시대 지식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후대의 여러 철학자들과 작가들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T.S.엘리엇은 “베유의 영혼은 그녀의 천재성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숭고하다”고 했으며, 알베르 카뮈는 베유를 “우리 시대의 유일한 위대한 정신”이라고 칭송했다. 세계를 향한 열렬한 사랑으로 타올랐던 그녀의 불꽃 같은 삶 전부를 담은 이 전기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원한 텍스트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