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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횔덜린

Friedrich Hölderlin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öderlin)
1770년 3월 20일 독일 서남부의 작은 마을 라우펜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친아버지와 의붓아버지를 모두 잃은 횔덜린은 홀어머니의 결정에 따라 성직자 교육 과정을 밟았지만, 튀빙겐 신학교를 졸업한 후 시인의 길을 걸었다. 시 창작에 열중하는 한편, 성직 복무를 피하고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독일 여러 지역과 스위스, 남부 프랑스를 전전하며 가정교사로 일했다. 1802년부터 정신착란의 징후를 보였고, 1806년 튀빙겐의 아우텐리트 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었다. 1807년 5월 “기껏해야 3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성구 제작 목수 에른스트 치머의 보호에 맡겨졌다. 튀빙겐 네카어 강변의 반구형 옥탑방(횔덜린투름)에서 정신착란자로 36년을 살다가 1843년 6월 7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괴테, 실러와 동시대인으로서 이들의 그늘에 가려 생전 수수한 문명(文名)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20세기 초 헬링라트, 니체, 릴케 등에 의해 독일 현대 시의 때 이른 선구자로 재평가받았다. 「반평생」, 「빵과 포도주」, 「평화의 축제」 등 많은 서정시, 소설 『휘페리온』과 미완성의 비극 『엠페도클레스의 죽음』, 그리고 그리스 문학 번역사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되는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핀다로스의 여러 송가 등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또한 「판단과 존재」, 「몰락하는 조국……」, 「비극적인 것에 관하여」 등 철학과 문학을 고찰한 여러 편의 산문과, 현실 체험에 대한 시인의 고뇌와 환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300여 통의 서한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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